김정태 (1869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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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김정태(金禎泰, 1869년 2월 7일 ~ 1935년 4월 8일)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입니다. 다음은 김정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입니다.
- 생애 및 경력:
- 1901년 함경북도 관찰부주사로 관직을 시작했습니다.
- 1903년 중추원의관, 1907년 전라남도 흥양군주사, 1909년 전라남도 영광군수를 역임했습니다.
- 경술국치 이후에도 군수로 유임되어 1910년부터 1923년까지 조선총독부 전라남도 영광, 광주, 순천의 군수를 역임했습니다.
-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라남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참여했습니다.
- 1923년 군수에서 퇴임한 후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냈습니다.
- 일본 정부로부터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, 1915년 다이쇼대례기념장, 1922년 훈6등 서보장,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 등을 받았습니다.
- 1923년 고등관 4등과 종5위에 서위되었습니다.
- 1935년 4월 13일자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, 전라남도 굴지의 실업가였으며, 노후에 고향으로 내려와 지방원로로 존경받다가 67세로 생을 마쳤고, 재산 일부를 사회사업에 기증하도록 유언했습니다.
- 친일 행적:
- 김정태는 일제강점기 동안 군수와 중추원 참의 등 요직을 역임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했습니다.
- 특히, 전라남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참여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친일 행적 중 하나입니다.
-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으며,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습니다.
- 흉상 철거:
-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공원에 김정태의 흉상이 있었으나,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철거되었습니다.
- 2019년 고흥 녹동고등학교 학생들이 역사탐구대회 과정에서 김정태 흉상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, 고흥군청에 철거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습니다.
- 2020년 4월 14일, 보훈처는 김정태 흉상을 행정대집행 형식으로 철거했습니다. 흉상은 후손이 별도로 보관하고, 흉상 아래 기둥 부분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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